[전문가 포럼] 집꾸미기를 시작한 한국

입력 2018-07-19 19:08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집꾸미기 열풍
삶에서 '나만의 개성' 찾는 성숙의 과정
그 이면의 젊은 세대 현실에도 주목해야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한국건축가협회 회장 >



젊은이들이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높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자랑하는 이케아 매장 앞은 주말이면 끝없이 늘어선 차량 행렬로 주차장 구경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셀프 인테리어 전시회는 젊은 부부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TV를 틀어봐도 마찬가지다. ‘먹방’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편성표 곳곳에 집과 공간을 꾸미는 ‘집방’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방송 후 ‘진상’ 관광객들의 극성에 시달리다 못해 얼마 전 해당 방송사가 집을 매입해야 했다는 가수 이효리 씨의 민박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다. 물론 인테리어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널찍한 대지 가운데 자리잡은 그림 같은 집이야말로 시청률 고공행진의 일등공신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30조원을 밑돌았던 국내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이 불과 4년 뒤인 2020년에는 41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 어려운 불황 가운데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특기할 만한 것은 과거 여성, 특히 주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홈 인테리어에 남성들이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 신용카드사 연구에 따르면 최근 남성 소비자의 인테리어 업종 카드 사용 실적은 이용금액 증가율과 이용건수 증가율 모두 여성을 앞섰다.

여러모로 고무적인 변화다. 인류사를 통틀어 문명의 진화 과정을 들여다보면 집꾸미기는 대개 상당한 수준의 발전이 이뤄진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하다. 생활의 필수 요소를 우리는 의식주(衣食住)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식의주(食衣住)라고 한다며 삶의 우선순위 차이를 논하곤 하지만, 두 문화 모두 주거 공간(住)을 가장 마지막에 두는 것만큼은 일치하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집은 없어도 살지만 먹지 못하거나 헐벗으면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려우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수만 년 전 동굴 벽화로 최초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된 원시 조상 역시 먹을 것과 가릴 것이 해결되고 나서야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려볼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생존 우선순위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집, 내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개인을 발견하고 사유(私有)의 개념을 정립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적 영역을 전제로 하는 자유의 시작인 동시에 남과는 다른 나만의 개성을 찾는 성숙의 과정을 의미한다. ‘영국사람의 집은 그의 성이다(An Englishman's home is his castle)’라는 격언이 바로 그런 뜻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거 공간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해당 문화권의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주거 문화가 발달하려면 우선 지속적인 정주가 가능해야 하니 식량이나 연료 같은 자원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춰야 하고, 나아가 적이나 자연의 위협에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의 힘도 필요하다. 특히 어느 시대나 공동체의 역량이 총동원됐던 신전이나 교회, 왕궁 같은 공공건축물과 달리 일반 시민의 집은 가장 보편화된 건축 기술과 미적 양식의 수준을 보여준다.

그래서 근래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의 마음과 필요에 딱 맞춘 집을 짓거나 전셋집이라도 집꾸미기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을 보면 우리도 이제 먹고사는 문제는 벗어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만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니, 우리가 젊었던 시절 주말도 없이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던 집과 비교하면 조금씩 우리 삶에 여유가 늘어간다는 긍정적 변화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오늘날 젊은 세대가 처한, 결코 녹록지 못한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힐링과 사색을 위한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경향을 ‘케렌시아(Querencia)’라고 명명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연구 결과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케렌시아라면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혼자서 숨을 고르는 공간을 말하는 것 아닌가. 소가 이기는 투우 경기는 없는데, 그렇다면 우리 청년들의 집꾸미기를 왜 하필이면 죽음을 앞둔 소에 비유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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